시공간의 기억을 깨뜨리는 문화적 기호
From:금교Author: 2023-11-27 15:47
옌타이를 언급하면 무엇을 생각날까? 선경(仙境)일까? 해변 도시일까? 자오둥(膠東) 지역의 특색과 풍습일까? 그렇다. 이것들은 모두 옌타이의 선명한 문화적 기호로 역사의 긴 흐름에서 점차 사람들의 옌타이에 대한 기억이 되었으며 이러한 문화적 기호와 관련된 옌타이의 이야기는 끝이 없이 펼쳐진다.
신선의 전설
역사적으로 옌타이는 매력적인 도시다. 옌타이는 고대에는 지부(之罘)라고 불렸고‘芝罘’로도 썼는데 북쪽에 지부도(芝罘島)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秦始皇)은 중국을 통일한 후 세 차례에 걸쳐 옌타이 일대를 순시하고 지부도에 가서 공적을 석비에 기록하고 신선과 신약을 찾아 거대한 해어를 쏘았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진시황이 한 풀이 무성하고 물이 아름다운 섬을 보고 이곳에 대진(大秦) 마장을 세운 것은‘양마도(養馬島)’라는 이름의 유래라고 한다.
옌타이에 관한 전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팔선(八仙)전설이다. 팔선이 봉래각(蓬萊閣)에서 술을 마시며 바람을 쐬다가 흥에 취해 각자 신통력을 발휘하여 바다를 건너갔다고 전해진다. 팔선에 관한 최초의 문자 기록은 당(唐)나라의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나타나며 이후 민간에 널리 퍼져 많은 문인과 묵객들의 묘사를 거쳐 명(明)나라의 오원태(吳元泰)가 소설 <팔선출처동유기전(八仙出處東遊記傳)>을 쓴 후에야 여덟 명의 선인을 정식으로 확정하였다. 여덟 명의 선인은 세속 사회의 다른 계층을 대표하며 팔선전설은 독특한 특색을 지닌‘선문화’와 농후한 세속적 인정이 함께 융합되어 널리 회자되는 산해전설로 강한 인문학적 색채와 지역적 특색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중요한 국가급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신선의 기운이 감도는 펑라이(蓬萊)는 일찍이 수많은 문인과 묵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동경하게 했다. 이백(李白)은“뛰어난 봉래 시문과 건안의 풍모이요(蓬萊文章建安骨).”라고 했으며 이상은(李商隱)은“봉산은 갈 길이 없고 파랑새가 정중히 탐문해 주기를 바란다(蓬山此去無多路,青鳥殷勤为探看).”라고 썼으며 소식(蘇軾)은“동방의 운해는 끝이 없고 선인들이 맑은 하늘에 떠돌아다닌다(東方雲海空復空,群仙出沒空明中).”라는 문장이 있었고 이청조(李清照)는“서신을 기러기에게 부탁하고 동래는 봉래처럼 멀지는 않다(好把音書憑過雁,東萊不似蓬萊遠).”라고 썼다. 시인들이 뿌린 필묵은 선경 옌타이에 운치를 더했다. 펑라이는 중국 문화에서 선경의 대명사이자 옌타이의 간판이다.
오늘날 봉래각에 오르는 사람들은 선인들이 남긴 발자취와 전고를 보며 멀고도 친숙한 전설을 들으면서“문득 바다 위에 신선이 사는 산이 있다 하는데 그 산은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忽聞海上有仙山, 山在虛無缥缈間).”라는 구절을 떠올리지 않을까?
바다의 이야기
선산을 내려와 바다를 유람한다. 산에는 신선의 전설이 있고 바다에는 옌타이 사람과 바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부구지(芝罘區志)>의 기록에 따르면 한(漢)나라 때 즈푸의 출항구는 중국이 동아시아 여러 나라와 교류하는 중요한 해상 통로 중 하나이며 당나라 이후 즈푸 해구는 중국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광활한 바다는 예로부터 옌타이 사람들이 경운하는 또 다른 땅이었다. 해안에는 크고 작은 어촌이 있고 바다에는 점점이 있는 어선들이 다니며 옌타이 사람들과 바다가 어우러져 소중한 문화재를 탄생시켰다.
국가급 무형문화재 창다오(長島) 어호(漁號)가 그것이다. 창다오 어호는 창다오현 퉈지다오(砣磯島)에서 유래한 것으로 창다오 어민들이 바다를 건너 어업에 종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일종의 노동요다. 오랜 세월 동안 바다에서 생산 활동을 하면서 창다오 어호는 점차 그물을 칠 때의 상망호(上網號), 돛대를 세울 때의 수위호(竖桅號), 노를 저을 때의 요노호(搖櫓號), 돛을 올릴 때의 장봉호(掌篷號), 돈을 벌어라는 발재호(發財號) 등 다양한 작업 노래를 만들어냈고 모든 어호는 기본적으로 가사가 없고 허자를 위주로 했다. 수백 년 동안 은은한 어호는 바다 위에 울려 퍼지며 옌타이 사람들의 염원을 바다에게 들려주었다.
옌타이의 어업문화에 대해 말하자면 어등 축제(漁燈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정월 13일과 14일에 옌타이 연해 어민들의 이 특별한 축제가 성황리 개막된다. 제물을 준비하여 용왕과 해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어등을 켜고 배를 위해 제를 올려 물고기와 새우가 가득하고 무사히 출항하기를 기원한다. 또 절 앞에 무대를 설치하고 희곡을 공연하고 꽹과리와 북을 치며 앙가(秧歌, 중국 북방의 농촌 지역에서 널리 유행하는 민간 가무의 일종)와 용춤을 추고 폭죽을 터뜨린다… 일련의 행사는 전통적인 어등 축제를 더욱 활기차게 한다. 어등 축제는 전통적인 정월 대보름 축제에서 분리되어 현재 옌타이 지역의 산허우추자(山後初家), 루양(蘆洋), 바자오(八角) 등 12개 이상의 어촌 마을에서 전해지며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화적 상징으로서 어등 축제는 고대와 현대를 가로질러 노를 젓던 시절과 옌타이의 발전을 목격했다.
선풍해운(仙风海韵)은 인정이다
선산과 바다를 건너 돛대를 걷어내고 육지로 돌아와 옌타이를 돌아본다. 도시의 기원설에는 방어에 의한 도시를 건축하는 것이 비교적 흔하다. 옌타이라는 이름은 명나라 때 교동반도에 세운 성(城)과 봉화대(烽火臺)에서 유래했다. 옌타이(연대)의 ‘연’자는 한때 봉연(烽煙)이었지만 지금은 사람 사는 냄새(煙火氣)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올해 국경절 기간 동안 옌타이 황발해(黃渤海)신구 진사탄(金沙灘) 해변 공원 진사후이(金沙匯) 광장에서 열려 무형문화재 전시회가 다채롭고 재미있었다. 이곳에서 어등 축제의 발전과 전승이 연출되어 산둥 요리(魯菜), 교동 특색 음식이 관광객의 식욕을 돋우고 교동 앙가가 연출되고 어호가 우렁하게 울려 퍼졌다. 방금 나온 화보보(花饽饽)의 열기가 피어오르고 전지(剪紙, 종이 오리기), 미엔쑤(面塑, 물들인 밀가루를 반죽하여 형상을 빚는 중국의 전통 민속 공예), 니쑤(泥塑, 진흙으로 형상을 빚는 중국의 전통 민속 공예)의 조형물이 절묘하고 가오치아오(高跷, 장대다리 춤)와 인형극이 멋지게 연출되어 아득한 역사 전설과 현대 옌타이 사람들의 새로운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전설과 현실, 사람 사는 냄새와 옛 정취가 어우러져 옌타이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며 역사를 넘나드는 문화적 기호도 나날이 뚜렷해지고 있다.
선경에서 바다까지, 도시에서 마을까지, 전설의 시대에서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옌타이의 문화적 맥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쓰여지고 옌타이의 문화재는 대대로 전해지고 시간의 시련을 거쳐 더욱 빛난다.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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