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은 어떻게 빙설 스포츠를 했을까?

From:금교Author: 2024-01-24 11:07

 설판(雪板, 스노보드) 타기, 스케이트하기, 빙상(冰床, 중국 고대의 얼음 위에 특수한 가마) 타기, 빙희(冰嬉, 중국 고대 얼음 위에서 즐기던 겨울 놀이) 즐기기… 기나긴 역사 속에서 부지런하고 용감한 선주민들은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얼음을 타고 눈을 깨는 많은 도구를 창조적으로 발명하여 빙설 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고증된 자료에 따르면 중국 고대의 빙설 스포츠는 먼저 설상 스키가 등장한 다음 빙상 스케이트가 나타났다. 스키의 역사는 적어도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해발 설산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산을 넘어 설산 너머로 가야 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추위를 이겨낸 옷을 만들고 스노우보드, 썰매와 같은 교통 수단도 발명했으며 이는 초기의 설상 스포츠의 원형이었다.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춘추전국(春秋战国) 시대 지금의 신장(新疆) 아러타이(阿勒泰) 지역에 위치한‘정령국(釘靈國)’에서“그곳에 백성들은 무릎 아래부터 털과 말발굽이 있으며 잘 걷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정령국은 북쪽의 극도로 추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년 내내 눈이 내리고 사람들이 털이 있는 장화를 신고 스키를 타고 걷는 습관이 있으며 걷는 속도도 빠르다고 전문가는 추정했다.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시대에 몽골고원에 사는 사람들은 먹이를 쫓기 위해‘목마(木馬, 고대의 스키를 말한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수서·북적전(隋書·北狄傳)>에는“땅에 눈이 많이 쌓이고,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할까봐 목마를 타고 갑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 중에‘목마를 타고 간다’는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원(元)나라 때는 북방 숲에 살던 민족이 스키에 서서 눈 지팡이를 들고 활주하기도 했다.

 스키 역사에 대해 2005년 고고학자들은 신장 아얼타이산(阿爾泰山)의 남쪽 기슭 아러타이시의 둔더부라커(敦德布拉克) 계곡에 있는 거대한 바위 동굴에 스키를 탄 채로 여러 명이 사냥을 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 독특한 채색 암화(岩画)를 발견한 것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유적이 기원전 1만 년 정도로 북유럽과 러시아보다 이른 것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2006년 발표한 <아러타이 선어> 중, 국제스키연맹(FIS)은 아러타이를‘인류 스키의 종주국’으로 확인했다.

 빙상 스포츠는 송(宋)나라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중, 빙희가 가장 대표적인 종목이다. <송사·예지(宋史·禮志)>에는“임금은 후원(後苑)에 와서 꽃구경을 하며 빙희를 구경했습니다.”라고 기록되었다. 송나라와 비교해 보면 청나라는 진정으로 빙희를 발전시켰다. 건륭(乾隆) 10년(1745년)부터 매년 대규모 빙상 경기 행사인 빙희대전이 성대하게 개최되어 건륭, 가경(嘉慶), 도광(道光) 등 3개 왕조를 거쳐 거의 1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청나라의 빙상 스포츠가 빠르게 발전한 것은 한편으로는 조정에서 빙희와 같은 빙상 활동의 발전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건륭제가 집권 기간 동안, 빙희는 한때‘국속(國俗, 국가의 풍속)’이 되었다. 이와 함께, 청나라에서는 병사들에게 전문적인 빙상 훈련을 위해 스케이트 부대를 창설하고 전문 지도 기관인‘빙혜처(冰鞋處)’를 설립하여 스케이트 기술을 가르치는‘빙혜교습(冰鞋教習)’을 모집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빙상 장비의 개선은 빙상 스포츠의 발전을 더욱 촉진했다. 예를 들어, 청나라 때 단일 스케이트 날과 이중 스케이트 날이 박힌 두 가지 유형의 철제 스케이트가 등장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스케이트 날과 달리 청나라의 스케이트 날은 상대적으로 짧고 스케이트 뒤축 일부 아래에 스케이트 날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뒤축으로 얼음 표면에 닿아 미끄러짐을 멈추거나 이동 방향을 변경할 수 있었다.

 빙희대전의 이 멋진 고대‘빙상 경기대회’에 들어서면,‘창등(抢等)’,‘창구(抢球)’,‘전륭사구(轉龍射球)’등 다양한 빙상 경기 종목을 볼 수 있다.‘창등’이란 현대의 스피드 스케이팅을 말한다.‘창구’는 얼음 위에 빙구를 빼앗기고 오늘날 아이스하키 종목과 비슷하다.‘전륭사구’는 빙판 활주, 대형(隊形) 전환, 양궁 경기를 아우르는 스포츠 형식이다.

 그 외에, 청나라의 빙희대전에는 빙상이라는 특수한 교통 수단이 종종 등장했다. 빙상은‘타상(拖床)’이라고도 하는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는 도구다. 사실, (北宋) 시기의 해하(海河) 유역에 얼음 위에서 인력으로 갈대를 운반할 수 있는 빙상이 등장했다. 이 빙상은 길이 약 5척(尺), 너비 약 3척이며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들어지며 오늘날의 썰매와 유사하다. 일반적 빙상보다 황제가 빙희대전을 구경하고 탄 빙상은 훨씬 화려했다. 황제가 탄 빙상은 용봉무늬를 수놓은 노란색 비단으로 둘러쳐져 있어 멀리서 보면 큰 가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빙상은 사람이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8명이 뒤에서 밀고 나아가고 그 아래에는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기 쉬운 체인이 설치되어 있었다.

 역사적 자료에 따르면 건륭제는 빙상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여 매년 빙상을 타고 빙희대전을 관람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아울러, 건륭제는 빙희대전의 관람성과 흥미성을 제고하기 위해 대전의 규모를 확대하고 개최 시간을 늘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빙희대전의 기간은 최소 10일, 최대 1개월 이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건륭제는 빙희대전에 참여한 선수들을 위해 <빙희부(冰嬉賦)>를 작성하여 궁중 화가에게 빙희를 주제로 창작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그 중, 청나라 화가 장위방(張为邦), 복륭안(福隆安) 등의 합작으로 그린 <빙희도(冰嬉圖)>는 빙희대전에서 수많은 공연자들이 검을 휘두르며 깃발을 흔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으며 당시 빙상 스포츠의 뛰어난 기예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현재 <빙희도>는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겨울철의 정취가 점점 무르익는 가운데 옛사람들의 빙설 스포츠에 대해 알아보니 여러분도 그 즐거움을 체험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빙설장에 갈 채비를 서둘러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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