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곡예인들, 산둥 콰이수(快書)의 ‘광(廣)’과 ‘흥(興)’을 전승하여 무형문화재의 활성화를 실현하다
From:Author: 2022-07-15 15:45
산둥 콰이수는 일명 ‘주반콰이수(竹板快書)’라고 불리우고 있으며 중국 명나라 때 산둥서남지역에서 기원한 전통곡예(曲藝)형식이다. 산둥쾌서는 설창(說唱)을 위주로 하며 언어 리듬성이 강하고 표현이 과장되며 이미지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수시로 공연할 수 있는 특점을 가지고 있다.산둥 콰이수는 실생활을 신속하게 반영하고 독특한 예술적 효과를 가지고 있어 2006년에 중국 첫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양파이(楊派)산둥콰이수 제 3대 책임자이자 위파이(於派)산둥콰이수 전승자인 뤄광싱(羅廣興)은 올해 68세로 현재 정년퇴직후 지난에 광싱수창(廣興書場)공연장을 설립하고 그 이름 그대로 전통 산둥예술 콰이수의 ‘광’과 ‘흥’을 널리 알리고 있다.

곡예문화에 해박한 뤄광싱
뤄광싱은 어려서 부터 핑수(評書)대가 진원성(金文聲)의 밑에서 전통곡예를 배웠다. 콰이수문화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뤄광싱은 얘기가 끊기지 않고 표정도 생기로 넘친다. ‘산둥콰이수는 핑수와는 다르다. 대쪽으로 된 리듬악기 박자에 맞추어 설창을 하는 것을 중요시한다.들을 수록 재미있고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내용속에 빠져들게 한다.’뤄광싱은 이렇게 말하며 흥을 돋구어 콰이수 한가락을 부르기 시작하였다.그 모습은 68세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에 차 넘쳤다.뤄광싱은 산둥콰이수 연기는 과장되고 형상이 생동적이며 연기자는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신속하게 여러 배역을 맡아야 해서 내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뤄광싱은100명에 가까운 제자를 거두었지만 진정으로 콰이수에 정통한 제자는 많지 않다.

뤄광싱이 산둥콰이수 ‘대노마가점(大鬧馬家店)’ 공연을 펼쳐보이고 있다
정년퇴직 후, 광싱수창은 뤄광싱의 무대가 되었고, 동시에 지난에서 여전히 곡예를 공연하는 몇 안 되는 장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여기서 옛 친구들을 만나고, 콰이수를 부르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광싱수창의 예술가들은 모두 뤄광싱의 옛친구들로 그중 일부는 이미 고희를 넘겼고 최고령자의 나이는84세에 달한다. 뤄광싱 가족 모두도 콰이수 전승자로 뤄광싱 자신과 딸, 외손까지 4세대가 콰이수 무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뤄광싱의 외손녀 왕시웨(王曦悅)가 현대 경극 홍등기(紅燈記) 중 ‘원한이 마음속에 들어서서면 싸튼다’를 공연하고 있다.

뤄광싱의 외손자 왕치루(王琪儒)가 산둥콰이수 ‘청채단(青菜段)’을 선보이고 있다.
한해만 광싱수창에서는 50회의 공익 공연을 열었고 뤄광싱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곡예를 모른다. 곡예를 모르니 좋아할 수가 없다.’ 뤄광싱은 먼저 모두에게 곡예를 접하게 하고, 콰이수를 알게 하고, 흥미를 가지게 한 다음, 다시 의지를 가지고 배워야만 진정으로 전승할 수 있다고 하였다. ‘현재 산둥콰이수는 실전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때문에 먼저 전통을 보존하고, 다시 현대사회와 융합하여 발전시켜야 한다.’ 곡예류 무형문화재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뤄광싱과 그의 팀은 전승실천기지를 설립하고 곡예문화를 교정속에 들어서게 하며 공익과정을 개최하였다. 또한 방역, 반사기(诈骗)를 주제로 한 새로운 내용의 산둥쾌서를 선보였고 첫 번째 무형문화재 생활시트콤 ‘오늘은 내가 주연이다’를 촬영하였으며 옛 전통문화를 빌어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였다. 이러한 도경을 통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곡예 무형문화가 ‘천만 집안에 널리 들어서’고 시대와 함께 ‘흥’하도록 하였다.

무형문화재 생활시티콤 ‘오늘은 내가 주연이다’ 스틸
편집:张懿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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