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차오밍: <공자가어(孔子家语)>는 중화문명역사 연구의 새 발전을 추진하였다.

From:중국 공자 넷Author: 2021-10-25 09:01

 편집자의 말: 10월 16일 중국 공자기금회의 협조하에 니산세계유가학센터 공자연구원에서 주최하고 중화공자학회논어학연구센터와 ‘공자연구’편집부 및 수사서원(洙泗书院)에서 주관한 ‘<공자가어>와 중국문화에 대한 새 인식 고차원 학술포럼’이 취푸에서 개최되었다. 본 포럼에서는 중국 여러 대학교와 학술연구기구에서 온 50여 명의 전문가와 학자들이 <공자가어>에 대한 새로운 연구인식을 토론하고 각자의 최신 연구성과를 공유하였다. 

 포럼기간 중국공자넷에서는 <공자가어>의 학술적 지위와 가치, 그리고 그 당대 의의를 알아보기 위하여 니산세계유가학센터 부주임이며 공자연구원 원장인 양차오밍에 대하여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공자가어>는 ‘공자연구에서의 첫번째 서책’

 중국공자넷: <공자가어>는 어떤 책인가? <공자가어>와 <논어>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양차오밍: <공자가어>는 아주 중요한 서책으로 그 가치는 <논어>에 못지 않다. 중국 전통문화 경전은 <사서오경>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사서>는 <오경>을 해석하는 서책이므로 <오경>보다 간단하다. <공자가어>의 가치는 <사서>에 뒤지지 않는다. 때문에 ‘유가학의 첫 서책’이나 ‘공자문화의 첫 서책’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오랫동안 위서(伪书)로 인식돼 왔기 때문에 크게 취급받지 못했다. 비록 일부 학자들의 연구에서 이 서책을 취급하기는 하였지만 <공자가서>의 진정한 가치와 비길 때 학술계에서 이 책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너무 적다.

 <공자가서>는 공자언론과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여 펴낸 서책으로 역사문헌적 가치로 볼 때 <논어>에 못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장기간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유설(遗说)을 남겼다. 이러한 유설은 공자의 제자들이 필기로 남긴 것이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공자의 제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수집하고 편집하여 공자의 학설을 전파하였다. 공자의 사상을 더욱 잘 알리기 위하여 그중 일부를 선택하여 <논어>로 편집되었고 나머지는 <공자가어>로 편집되었다. 때문에 <공자가어>와 <논어>는 같은 문헌자료에서 편집된 두 권의 서책이며 이로써 우리는 <공자가어>의 중요성도 능히 알수 있다.

 <논어>는 어록체(语录体)로 된 것으로 편집자가 공자의 말을 빌어 공자의 사상을 표현한 서책이다. <공자가어>는 공자가 강의를 할 때 장면과 기록자 등을 기록하여 놓았다. <공자가어>에 나타나는 문헌적 자료는 공자 연구에서의 정확하지 않은 부분과 <논어>연구에서의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연구에 방대한 핵심 문헌을 제공하여 준다. 때문에 <공자가어>는 하나의 보물창고와 같다고도 말할 수 있다.

 <공자가어통해(通解)>는 깊은 탐구의 결과물이다.

 중국공자넷: 양차오밍 원장은 <공자가어>연구분야의 대표자이며, 편집한 <공자가어통해>는 <공자가어>연구의 이정표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당시 어떤 계기로 위서라는 딱지가 붙은 이 서책에 주목하게 되었고 또 이 서책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는가?

 양차오밍: <공자가어>에 대하여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공자를 연구분야로 삼고 있으므로 공자와 관련된 문헌자료에 대하여 줄곧 관심을 갖고 있었다. 1980년대 말 나는 안후이 성 푸양(安徽阜阳)에서 한문 목간(汉简)들을 발견하였다. 이 목간은 <공자가어>가 확실히 존재했음을 안받침해주었다. 그후부터 <공자가어>에 대한 나의 관심은 식은 적이 없다.

 훗날 나의 은사였던 리쉐친(李学勤)선생이 <공자연구>에 ‘죽간(竹简)<논어>와 한위공씨가학(汉魏孔氏家学)’이라는 문장을 발표하였는데 그 문장에서 리쉐친 선생은 죽간에 적힌 일부 자료들은 <공자가어>의 원형이었을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시기 초나라 무덤에서 <공자가어>가 발견되어 놀라움과 충격을 주었다. 그후 나는 이 서책의 진위문제와 사용된 문헌자료 및 편찬 등 문제에 대하여 사고하게 되었고 이어서 이 서책의 가치에 대하여서도 사고하게 되었다. 

 초기 문헌, 특히 한문 목간이 발견된 이후 <공자가어>가 위서라는 목소리는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출토된 전국시기 죽간을 상하이 박물관에서 전시하였을 때 사람들은 전국시기 문헌이 <공자가어>문헌과 비슷함을 발견하였다. 이는 학술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21세기 초 나와 나의 제자들은 이 서책에 대하여 주석과 주해를 달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독서반(读书班)을 설립하고 <공자가어>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연구 중에 우리는 <공자가어>의 가치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였음을 발견하였다. 하여 계통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통해(通解)를 시작하였다. 통해는 바로 전 서책을 전면적으로 관찰한 다음 매 한 편과 한 장의 내용에 대하여 사고하고 그와 관련된 문헌들을 대비하여 부동한 각도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공자가어통해>가 나오게 되었다.

 일반독자들은 어떻게 <공자가어>를 이해할 것인가?

 중국공자넷: <공자가어>는 공자를 알아가는 중요한 저서인데 일반 독자들은 어떻게 <공자가어>를 읽고 이해하면 좋은가?

 양차오밍: 지금 많은 사람들이 유가학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늘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나에게 묻는다. 나는 늘 <대학>, <중용>과 <논어>를 추천하고 있으며 <공자가어>도 빼놓지 않고 추천한다.  <공자가어>에는 생동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 묘사가 구체적이다. <논어>의 일부 구절은 후세인들이 읽으면서 부동한 해석을 하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리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을 그때의 장면과 언어환경 속에서 다시 본다면 대체적으로 더 정확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공자가어>의 의의는 대화가 진행되는 구체적인 장면을 제공하여 생동성과 형상성은 물론, 구체적인 언어환경을 제공함으로 그 대화의 해석이 더욱 전면적이도록 돕는다는 데 있다. 

 공자의 제자들은 수시로 공자의 언론(言论)을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현재 전해 내려오는 공자의 유언(遗言)은 모두 공자가 장기간 제자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그 제자들이 적은 것이다. 

 <공자가어>에는 공자의 제자 자장(子张),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물음을 청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자장과 자하의 물음에 공자가 너무 멋들어지게 대답하여 제자들이 벌떡 일어나 감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기억에 남았다고 적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아주 생동하게 적혀 있었으며 공자의 강의 내용뿐만 아니라 공자의 사상,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대화가 진행되는 장면과 배경까지 낱낱이 적혀 있어 독자들이 읽을 때 생동한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공자가어>는 중화문명사 연구를 추진한다.

 중국공자넷: 2013년 11월 26일 시진핑 총서기가 공자연구원을 시찰하실 때 공자연구원의 성과물인 <논어전해(诠解)>와 <공자가어통해>를 보시고 ‘이 두 책을 자세히 봐야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8년이 지난 오늘날, 공자연구원과 학술계에서는 <공자가어>연구 면에서 또 어떠한 새로운 성과물을 따내었는가?

 양차오밍: <공자가어>연구 방면에서 공자연구원에서는 많은 일을 하였다. 일단 <공자가어>연구와 관련된 대량의 저서를 출판하였는데 그중에는 내가 쓴 <공자가어>와 관련된 일반인 독서물과 교사용 서적, 그리고 논문집 등이 있다. 현재 공자연구원은 이미 <공자가어>를 연구하는 중요한 기지로 되었다. 

 학술계에서 <공자가어>의 연구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자가어>열’이 일고 있다. 관련 논문이 대량으로 나타났다. 취푸사범대학교의 박사·석사졸업논문만 하여도 <공자가어>와 관련된 것이 최소 2-30편으로 모두 깊은 연구를 거친 논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공자가어>연구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현재 출토문헌이 많아짐에 따라 학술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으며 <공자가어>에 대한 학술연구도 크게 추진되고 있다. <공자가어>는 새로운 사상세계를 열어주었으며 이를 통하여 우리는 새롭게 고대 문명을 알아가고 고대 문명의 이해에서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중국문화의 연구와 조기 유가학 연구, 심지어 전체 중화문명사의 연구에 아주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우리는 <공자가어>연구가 현재 문화강국(文化强国) 건설과 중화전통문화의 ‘양창(两创혁신과 창조)’, 그리고 우리들이 문화자신감을 가지는데도 모두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뉴스고리:<공자가어>에 대한 1분 동안의 이해

 <공자가어>는 따로 <공씨가어(孔氏家语)>, 혹은 간략하여 <가어>로 불리우며 공자와 그 제자들의 사상 및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현재 전해 내려온 <공자가어>는 총 10권 44편이며 위나라 왕숙(王肃)이 주해를 달고 책 마지막 장에 왕숙서(王肃序)와 ‘후서(后序)’가 부착되어 있다.

 <공자가어>는 최초로 <한서·예문지(汉书·艺文志)>에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어>는 총 27권으로 공자의 제자들에 의하여 편집되었지만 실전되었다고 적혀있다. <공자가어>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많은 쟁의가 존재하였다. 송왕백(宋王柏)의 <가어고(家语考)>, 청나라 요제항(姚际恒)의 <고금위서고(古今伪书考)>, 범가상(范家相)의 <가어정위(家语证伪)>, 손지조(孙志祖)의 <가어소증(家语疏证)> 등에서는 모두 <공자가어>가 위서라고 하였다. 송나라 주희(朱熹)의 <주자어록>, 청나라 진사가(陈士珂)와 전복(钱馥)이 쓴 <공자가어소증(孔子家语疏证)>의 서문(序文)과 발문(跋文), 그리고 황진(黄震)의 <황씨일초(黄氏日抄)>에서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하지만 천여 년 동안 <공자가어>는 근거가 없는 서책으로 전해왔다. 

 1973년 허베이(河北) 딩현(定县) 팔각랑서한묘(八角廊西汉墓)에서 출토된 <유가자언(儒家者言)>죽간의 내용은 현재 <가어>의 내용과 흡사하였다. 1977년 안후이 푸양 쌍고퇴서한묘(双古堆西汉墓)에서도 <유가자언>과 비슷한 내용의 죽간이 출토되었다. 그 내용은 모두 <가어>와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은 <공자가어>의 존재에 근거를 제공하였으며 <공자가어>가 위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서한시기 이미 일정한 형식을 갖추었고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공자가어>는 공안국(孔安国) 및 왕소와 동시대에 살던 공맹(孔猛)등 공씨학자들이 긴 세월동안 편찬하고 개편하고 보충하는 과정을 걸쳐 완성된 공씨가학(孔氏家学)의 성과물이다. <공자가학>은 공자와 그 제자들 그리고 고대 유가학 사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편집:高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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