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물이 서식하는 곳

From:Author: 2022-06-09 08:46

  역사의 아름다움은 인력으로 조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승되는 아름다움은 사람이 꾸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문물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는가에 달려 있지 않고 오랜 기간에 걸쳐 전승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박물관의 존재는 유물이 서식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하고 역사와 현실을 서로 연결하는 단추가 된다. 중국에서는 베이징 고궁박물관, 타이베이 고궁박물관, 난징박물관이 그 풍부한 소장품으로 단연 최고로 꼽힌다.  

  문물 아닌 것이 없다

  1925년 10월 10일, 자금성(紫禁城) 신무문(神武門)의 문동(門洞, 성문 통로)에 고궁박물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자금성에서 고궁으로 명칭이 바뀐 것은 이 곳이 더 이상 황궁이 아니라 박물관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백 년 동안 금지 구역이었던 이 곳이 정식으로 개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수천 수백만의 일반 시민이 신비스런 옛 황실 궁전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궁박물관 원장을 지낸 정신먀오(鄭欣淼)는“어떤 사람은 고궁이 자금성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고궁이 박물관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고궁이 고건축이라고 하지만, 저는 박물관, 고건축, 문물 및 고궁의 문헌 기록물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닌 그 전체가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10년간 고궁박물관 원장을 지낸 그는 고궁 대수리를 시작했고 7년간의 문화재 정리를 통해 처음으로 고궁의 국보 180여만 점을 파악해 냈다. 그가 보기에, 이런 정리 사업을 통해 해결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문물 정의에 관한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에는‘이 곳은 문물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 예로, 고궁은 만여 권의 지방극 대본, 각종 의상과 소품이 있다. 옛날에는 의상만 문물로 여길 뿐 머리에 쓰고 발에 신는 것은 문물로 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정의에서 이것들은 모두 연극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므로 모두 문물에 속한다.  

  예를 들어, 태화전(太和殿) 앞의 광장 양쪽에 흰색 선이 몇 줄 있는데 그것은 고궁이 대전을 치를 때 문무백관 서열 위치도였다. 또 다른 예로, 군기처(軍機處) 안의 탁자는 느릅나무로 만들어져 보기에는 값어치가 없어 보이지만, 이면에는 깊은 문화적 함의가 있다. 즉 봉건 시대의 등급관념은 신하가 황제와 같은 재질의 나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먀오는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궁에서 매우 평범한 물품처럼 보이는 것은 일부 관념과 전장(典藏: 진귀한 소장품) 제도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고궁박물관은 우리 중국 전체의 역사문화 전승에 비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화 예술의 보고(寶庫)

  바이옌쑹(白巖松) MC는 일전에 중국의 고궁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 바 있다.“해협 양안에 고궁박물관이 하나씩 있는데, 뿌리와 근원이 같은 두 고궁박물관 모두 중화의 고대 문화를 대표하는 귀중한 보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그가 말하는 두 고궁박물관은 베이징에 위치한 고궁박물관과 타이완(臺灣)에 있는 타이베이(臺北) 고궁박물관을 말한다.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의 전시품 중 가장 진귀하다고 알려진 3대 보물은‘모공정(毛公鼎)’,‘취옥백채(翠玉白菜)’,‘동파육형석(東坡肉形石)’이다. 이 외에도, 대량의 정미하고 우아한 서화는 타이베이 고궁의 소장품 중에서도 최상품에 속한다. 한 전문가는 중국 회화사를 쓸 때, 왕조마다 가장 대표적인 회화작품 80% 정도가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에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의 서화 5400여 점 중 범관(範寬)의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 곽희(郭熙)의 <조춘도(早春圖)>등 산수화 지보(至寶)를 포함한 송(宋)나라 시대의 그림만 940여 점에 이른다. 서예 최상품 중에는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과 <한식첩(寒食帖) 외에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은 회소(懷素)의 <자서첩(自敘帖)>, 안진경(顏真卿)의 <제질고(祭侄稿)>, 풍승소(馮承素)의 <난정집서(蘭亭集序)> 모사본 등 눈부신 소장품도 보존하고 있다.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이 문화교류를 더욱 잘 진행하기 위해 일찍이 베이징 고궁박물관, 상하이 박물관, 저장 박물관 등과 공동으로 연‘산수합벽(山水合璧)’전시회에서 불에 타 두 토막이 난 후 각각 다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황공망(黄公望)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를 다시 합쳐서 전시했다.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장을 지낸 친샤오이(秦孝儀)는“중국의 아름다움은 문화예술에 있고,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은 모두 고궁에 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의 문물은 베이징 고궁박물관 문물의 일부로서, 양원이 협력교류해야만 비로소 완전한 고궁박물관이다.  

  천 년을 뛰어넘은 은루옥의(銀縷玉衣)

  난징은 스토리가 있는 도시다. 플라타너스로 에워싸인 이 도시는 국가 1급 박물관인 난징박물관을 탄생시켰다. 국가가 투자한 최초의 종합 박물관이자 중국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이 박물관은 현재 진귀한 문물의 수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아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버금간다.   

  진품(珍品)이 풍부한 난징박물관에서 유명한 것은 진관(鎭館, 박물관 소장품 중 가장 진귀한 문물)의 보물 18점 중 하나인 ‘은루옥의’이다. 은루옥의를 잘 모르는 사람은 갑옷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부장품의 일종이다.  

  예로부터, 고대 황제는 불로장생을 추구한 사람이 많았다. 양한[兩漢, 전한(前漢)과 후한(後漢)] 시기, 사람들은‘시사여봉생(侍死如奉生, 죽은 사람을 섬기는 것은 산 사람을 섬기는 것과 같음)’을 신봉했는데 그들이 보기에 한 사람이 죽더라도 그의 영혼은 살아 있으며 옥을 착용하면 시체를 영구히 유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양한 시기의 귀족들은 옥의를 입고 매장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옥의의 존재는 무덤 속 사람을 대신해 영혼을 지켜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굴꾼들을 불러들여 안녕을 방해했다. 그래서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는 즉위한 후, 옥의(玉衣) 제도를 폐지할 것을 명했다. 이렇게, 옥의는 역사 무대에서 막을 내렸다.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것 하나하나가 다 보기 드문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난징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은루옥의는 1970년에 쉬저우(徐州)에서 출토되었는데 이는 동한 팽성왕(彭城王) 유공(劉恭)의 후예 소유이다. 옥의는 겉보기에는 밋밋하지만 눈여겨 보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길이 1.7m 옥의에 붙어 있는 옥 조각은 모두 2600여 개이다. 이 옥의는 섬세하고 공예가 복잡해 복원 작업에만 4개월 걸렸다.  

  전국에서 출토된 문물 중, 옥 조각이 2000개 넘게 남아있는 은루옥의는 거의 없다. 보배 중의 보배인 난징박물관의 이 은루옥의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은루옥의를 복원한 것으로 세계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 존재는 사람들에게 역사 속으로 다가가 천년 역사의 침전이 주는 울림을 느끼게 해주었다.

편집:张懿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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