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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퉁(大同)시의 고건축, 한눈에 천 년의 역사를 보다

2026-11-06 16:07:52 来源:금교

산시(山西)성 다퉁(大同)시는 북조(北朝)와 요(辽)·금(金) 시대 역사의 절반을 품고 있다. 우저우산(武州山) 남쪽 기슭에 자리잡는 운강석각(雲岡石刻)에서부터 성 안에 우뚝 솟아 있는 요·금 시대의 고건축, 그리고 거리와 골목에 남아 있는 유적과 박물관 소장 유물에 이르기까지, 기와 한 장, 조각상 하나마다 천 년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퉁시를 말할 때 가장 이름난 것은 바로 국내외에 명성이 높은 북위(北魏) 석각의 보물, 운강석각이다. 운강석각은 북위 문성제(文成帝) 시기에 처음 조성되기 시작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태무제(太武帝)가 불교를 탄압한 뒤 불법이 쇠퇴했는데, 문성제가 즉위한 후 불법을 부흥시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어느 날 행차하던 중 황제의 준마가 스스로 고승 담요(昙曜)의 승복을 물었고, 문성제는 이를 계기로 고승 담요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에게 석각 조성을 맡기는 중책 부여했다. 담요는 우저우산에 자리를 잡고 5개의 대형 석굴을 조성하는 일을 주관했으며, 북위의 5대 황제를 상징하는 5존(尊)의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황실과 장인들이 잇달아 석굴을 개착하고 불상을 조성했으며 실크로드의 풍모를 융합해 다퉁시의 천년 전설을 새겨 넣었다.

절벽의 석각이 북위의 웅장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면, 성 안의 고건축은 요·금 시대 건축의 기풍을 간직하고 있으며, 화엄사(华严寺)는 그 대표적인 곳이다. 중원 지역의 고찰이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는 전통적 배치와는 달리, 화엄사는 서쪽에 자리잡고 동쪽을 향해 있어, 아침 해와 극락정토에 대한 영원한 동경을 담고 있다. 화엄사를 둘러볼 때는 예로부터 “윗사찰에서는 기세를 보고, 아랫사찰에서는 국보를 보고, 보탑에서는 지하 석실을 본다”는 말이 있다. 윗사찰의 대웅보전은 요나라 시대의 기초와 금나라 시대의 전각 구조, 명나라 시대의 조각상, 청나라 시대의 벽화를 한데 갖추고 있다. 전각 지붕 위에 있는 두 개의 높이 4.5미터에 달라는 거대한 유리 치문(鸱吻, 지붕 용마루 양 끝에 장식하는 상상의 동물 형상)은 중국에 현존하는 고건축 유리 치문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큰 것이다. 아랫사찰 전각 내부의 요나라 시대 채색 조각상은 살아 있는 듯 생생하며, 특히 합장한 채 치아를 살짝 드러낸 보살상이 가장 유명하다. 이 보살상은 자태가 우아하며 신성함과 인간적인 영기를 함께 지니고 있어 예로부터 ‘동양의 비너스’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사찰 안의 화엄보탑은 2010년에 요·금 시대의 형식을 본떠 복원한 것이자만, 탑 아래에는 100톤의 순동으로 조성된 지하 석실이 있으며, 그 안에 사리와 천 존의 동불을 소장하고 있어 선의 정취가 깊고 그윽하다.

화엄사의 황실 사찰다운 기품을 둘러본 뒤, 천년 고찰 선화사(善化寺)를 찾아간다. 선화사는 당나라 때 처음 세워졌으나 요나라 말기의 전란으로 훼손되었고, 금나라 때 대대적인 보수와 수리를 거쳤으며, 명나라 때 현재의 이름으로 정해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현존하는 요·금 시대 사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 상태도 가장 완벽한 사찰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이름을 듣고 찾아오는 곳은 두 군데다. 하나는 산문 안의 서방광목천왕으로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고건축계의 ‘인기 스타’이자 눈에 확 띄는 존재다, 다른 하나는 길상천녀 채색 조각상으로 ‘금나라 시대 가장 아름다운 채색 조각상’으로 불리며 건축가 량쓰청(梁思成)의 극찬을 받았다.

불교 사찰의 고요함에서 벗어나 동쪽으로 걸어가면 동남읍 역사문화지구로 들어선다. 한때 낡고 오래되어 얼룩진 모습을 간직했던 거리와 골목, 마당과 건물들은 ‘옛모습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보수한 뒤 무형문화유산 공방, 문화창작 공간, 예술 전시관으로 탈바꿈하여, 중후한 고건축과 서민 생활의 운치가 어우러져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쪽에 자리한 현장대원(县长大院) 박물관은 원래 현지 부호의 사저였으며, 두 명의 민국시기 현의 책임자와 인연을 맺으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가장 사람들의 호기심을 끄는 것은 바로 안뜰에 숨겨져 있는 벽돌로 쌓은 지하 통로다. 고증에 따르면 이 지하 통로는 이미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신해혁명 당시 고위 관료와 유력 인사들이 몸을 숨기던 장소에서 점차 해방전쟁 시기 국민당의 포탄을 피하는 장소로, 다시 전쟁과 기근에 대비하기 위한 방공호로 변해 왔다.

지상의 고건축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천 년의 품격이라면, 박물관에 남아 있는 유물들은 세월의 파편을 간직하고 있다. 원잉(文瀛)호숫가에 다퉁박물관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으며, 하나하나의 북위 유물과 요·금 시대 건축물의 남아 있는 일부 구조물들이 말없이 전시되어 한족과 북방민족의 융합, 그리고 천 년을 넘어 이어진 옛 도읍의 풍모를 조용히 들려준다. 수많은 귀중한 소장품 가운데 채색 도자기 진묘무사 용(彩繪陶鎮墓武士俑)은 특히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본래 고대에 무덤의 문을 지키고 망자를 수호하던 유물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이를 원형으로 한 ‘북위 직장인 토우(北魏打工俑)’ 문화창작 상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디자이너는 못생겼지만 귀여우면서 느긋한 토우 본래의 모습은 그대로 살리고 정장을 차려입고 출퇴근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현대 직장인의 모습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했다. 이를 통해 난해하고 아득하게 느껴졌던 북위의 문화적 맥락을 생생하게 되살려 젊은층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늘날 다퉁 고성벽 위에 서면, 저녁 바람이 얼룩진 성벽의 벽돌을 가볍게 스치고, 해질 무렵의 빛이 아득한 하늘 끝을 향해 번져간다. 옛날의 번화함은 이미 한 도시의 아득하고 고풍스러운 정취로 응축되었다. 이미 지나간 세월을 굳이 되돌아볼 필요 없이, 이 따뜻하고 묵직한 바탕을 품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생명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编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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