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하고 상서로움을 상징한 말들
2026-01-08 15:58:11 来源:금교
2025년 12월 18일, 중앙방송국은 <2026년 춘절 특집>의 마스코트 이미지를 발표했다. 마스코트는 ‘치치(騏騏)’, ‘지지(驥驥)’, ‘츠츠(馳馳)’, ‘청청(騁騁)’ 4마리의 준마로, 이들은 활기차고 사랑스러우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설 특집의 주제인 ‘막을 수 없는 기세’와 잘 어우러지며 서로 조화를 이뤘다. 마스코트의 디자인은 중국의 여러 시기에 등장한 말의 고전적인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유운문(流雲紋, 구름이 흐르는 형태의 문양)과 산운문(山雲紋, 산과 구름이 어우러진 형태의 문양)을 비롯한 천년을 이어온 전통 문양을 입혀,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아름다움과 새로운 시대의 기상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성공을 향한 여정과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4마리의 날렵하고 귀여운 준마가 우리에게 기쁨과 활력, 희망을 전하는 동시에 또 어떤 뒷이야기를 선사할까?
생기발랄한‘치치’
‘치치’의 디자인은 서주(西周) 시기의 청동 여(盠) 구존(駒尊)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기(騏)’의 원래 뜻인 짙은 청색 말의 색상을 따온 것이다. ‘치치’는 머리에 당노(当卢, 고대에 말의 머리에 매어 두었던 장신구)를 쓰고 머리털을 높이 묶은 채 점잖고 활기차며 원대한 뜻을 품고 있는 당당하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동 여 구존은 중국 고대의 귀중한 문화재로, 높이는 32.4cm, 길이는 34cm, 무게는 5.68kg에 달한다. 이 청동 유물은 고개를 들고 우뚝 선 망아지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상주(商周) 시대에 보기 드문 사실적인 동물 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존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귀를 쫑긋 세운 모습, 목의 갈기는 촘촘한 줄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짧은 꼬리는 아래로 늘어져 있으며, 배 쪽에는 소용돌이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등에는 사각형 개구리와 덮개 모양의 뚜껑이 있고 내부 공간은 비어 있어 술을 담을 수 있는 실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1955년 3월, 산시(陝西)성 바오지(寶雞)시 메이(眉)현 리자(李家)촌의 한 농부가 농사를 짓던 중 우연히 청동기 저장고를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구존을 포함한 총 5점의 청동기가 출토되었다. 이 청동기들은 모두 서주 중기의 ‘여(盠)’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구존의 몸통 앞부분과 뚜껑 안에는 총 105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서주 시대의 ‘집구례(執駒禮, 서주 시대의 말 관리와 관련한 의례)’에 대한 귀중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주왕(周王)이 직접 ‘집구례’를 주관하여 두 살배기 망아지를 암말과 분리시켜 말 관리 체계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동시에 여에게도 망아지 두 마리를 하사했다. 여는 명문에서 주왕이 같은 혈통 간의 유대나 의리를 잊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이 그릇을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구존은 서주 시기의 말 자원의 엄격한 관리를 반영하며 서주의 말 길들이기와 의례 제도 및 종법 사회를 연구하는 데 일차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동시에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혈연을 중시하고 예법을 숭상하며 말이 주는 군사적·경제적 역할에 의존하던 청동 시대의 문화를 전하고 있다.
힘차게 나아가는‘지지’
‘지지’의 디자인 영감은 한(漢)나라 천마(天馬)에서 비롯되었다. 그 모습은 국보급 문화재인 동분마(銅奔馬)를 참고했으며 날개는 금과 은이 박히고 소나무, 석류, 그리고 사냥 장면을 묘사한 전통 문양이 있는 구리로 만든 우산 형태의 장식에 새겨진 페가수스 모양을 본떠 제작되었다. ‘지지’는 양 날개를 펼치고 구름을 타고 해를 쫓는 자태로 힘차게 나아가는 기백과 정신을 잘 드러낸다.
현재 간쑤(甘肅)성 박물관에 소장된 동한 동분마는 ‘마초룡작(馬超龍雀)’, ‘마답비연(馬踏飛燕)’이라고도 불리며, 간쑤성 우웨이(武威)시 뇌대한묘(雷台漢墓)에서 출토되었다. 동분마의 높이는 34.5cm, 길이는 45cm, 너비는 13cm, 무게는 7.15kg이다. 이 말의 몸통은 튼튼하고 사지는 길쭉하며, 발굽은 날렵하고 세 발은 하늘로 솟아오르고 한 발은 놀라서 뒤돌아보는 제비를 밟고 있으며 고개를 들고 울부짖으며 앞으로 질주하는 모습은 동분마가 빠르고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상징한다.
1969년 9월, 우웨이현 신선인민공사 신선대대의 마을 주민들이 방공호를 파던 중 우연히 고대 무덤을 발견했다.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 마차와 말, 의장용 무사 인형과 희귀한 동분마는 간쑤성의 고고학 발굴에서는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유물로 당시 사람들은 동분마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다.
동분마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 본 사람은 바로 궈모뤄(郭沫若)였다. 그는 동분마를 처음 보자마자 그 말의 모양에 감탄을 표하며 바람처럼 빠르고 번개처럼 강렬한 기세를 지니고 있으며 역학적 균형 원리에 부합하는 의심할 여지 없이 희귀한 보물이라고 생각했다며 “베이징에 가져가면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동분마는 베이징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놀라운 명성을 얻었다.
동한 동분마는 한대 사회에서 말을 숭상하는 풍습의 영향으로 생겨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청동 공예품이다. 말은 한대 사회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군사 장비 및 농업 생산의 힘을 제공하는 중요한 존재였다. 한나라 정부는 말을 ‘구적(口籍)’으로 등록하고 한무제(武帝)는 <천마가>를 창작했다. 이처럼 말은 다양한 상황에서 신격화되고 칭송되었다. 또한 한대에는 차와 말, 명기를 부장품으로 사용하는 풍습이 성행하며, 말을 부의 상징으로 여겼다. 사료에 따르면, 한무제는 세 차례에 걸쳐 서역에 사람을 보내 오손마(烏孫馬)를 구했으며, 한나라 시대, 말은 탁월한 군사적 성과를 거둔 혁혁한 공이 있는 중요한 존재였다.
자신감 넘치는‘츠츠’
‘츠츠’의 디자인은 당(唐)나라 삼화마(三花馬)에서 영감을 받았다. 삼화마는 말갈기가 세 조각으로 다듬어져 붙여진 이름으로 소릉육준(昭陵六駿) 등을 대표로 당대 문물과 사료에 등장하는 최고 등급의 말을 의미한다. 의기양양한 ‘츠츠’는 묶인 말꼬리로 인해 더욱 용맹한 기운을 발산하며 자신감 있고 여유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서기 636년, 당나라의 유명한 화가 염립본(閻立本)과 공예가 염립덕(閻立德)은 어명을 받들어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과 함께 사방으로 출정했던 준마 6필을 위해 석상을 조각했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상 유명한 ‘소릉육준’이었다. 두 예술가가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 결과 6마리의 준마는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말갈기가 모두 세 가닥으로 정성껏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사료에 따르면, 당고조(唐高祖) 이연(李淵)이 군사를 일으킬 때 동돌궐의 시비가한(始畢可汗)에게서 군마를 구입하여 당나라 철기병의 기반을 다졌다고 한다. 북방 유목 민족이 최고 등급 말의 말갈기를 장식하는 전통은 중원에 도입되어 중원 문화와 결합하면서 유명한 ‘삼화마’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당태종 이세민은 즉위한 후, 롱우(隴右), 하서(河西) 등지에 넓은 목장을 개척하고 엄격한 마적(馬籍)과 마인(馬印) 제도를 수립했다. 삼화마는 흔히 궁정과 귀족들이 타는 말로 귀한 신분을 상징했다. 당대 이래 삼화마는 당삼채(唐三彩)와 도용(陶俑), 궁중 회화에 많이 등장하며, 성당의 번영과 부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건장한 체격의 ‘청청’
‘청청’의 디자인 원형은 프셰발스키 야생마다. 프셰발스키 야생마는 현재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야생마 종으로 6000만 년이라는 긴 진화의 역사를 가진 ‘생물 유전자 화석’이다. ‘청청’의 외형은 굵고 튼튼하며 건장하여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프셰발스키 야생마는 일반적으로 몸길이가 약 210cm, 키는 약 110cm, 체중은 약 350kg정도로, 사육된 말에 비해 약간 낮은 체형을 가지고 있지만 매우 건장한 편이다. 그들의 갈기는 단단하고 곧게 서 있으며 다발 모양으로 분포되어 있어 원시적인 야생성과 자유로움을 강조한다.
프셰발스키 야생마는 원래 중국 신장(新疆), 간쑤, 네이멍구(內蒙古) 등지에 사는 야생마였으나, ‘프셰발스키’라는 이름은 러시아 장교이자 탐험가인 프셰발스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1879년, 프셰발스키는 신장을 탐험하던 중 처음으로 이 종을 발견했으며, 이후 탐험대를 이끌고 3차례에 걸쳐 야생마의 표본을 포획하고 수집했다. 1881년, 러시아 학자 폴랴코프는 이를 새로운 종으로 지정하고 프셰발스키의 이름을 따서 ‘프셰발스키 야생마’로 명명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야생마가 멸종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구상 마지막 야생마’라는 프셰발스키 야생마가 발견됐을 때 이 말의 운명도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많은 해외 탐험대가 밀렵을 위해 몰려왔고 그들의 서식지가 인간 활동에 의해 크게 파괴되면서 중국에 널리 분포했던 야생마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신장에서 프셰발스키 야생마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멸종 위기에 처한 프셰발스키 야생마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중국도 1986년에 ‘야생마 귀향 계획’을 시작하여 외국 동물원에서 높은 가격에 프셰발스키 야생마를 들여와 어려운 연구와 번식을 시작했다. 그 결과, 마침내 1987년에는 첫 번째 프셰발스키 야생마의 망아지가 태어났다. 이후 개체수는 점차 증가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포획과 사육을 통해, 야생에서의 생존에 적응하며, 야생의 본능이 완전히 되살아난 프셰발스키 야생마는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갔다. 2025년 8월 기준, 중국 내 프셰발스키 야생마 개체수는 총 900마리를 돌파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게 되었다. 이는 중국의 생물 다양성 보호와 생태 문명 건설의 중요한 성과이기도 하다.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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