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을 드러낸 신비한 고대왕국 촉(蜀)나라

From:《금교》Author:류옌(劉岩)、 톈즈(田芝) 2021-10-27 08:58

 신비롭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삼성퇴(三星堆) 유적은 고대 촉나라 문명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중화 문명의 ‘역사의 암호’를 간직하고 있다. 

 삼성퇴 유적은 20세기 인류가 발견한 위대한 고고학 성과 중 하나로 1986년 발굴과 함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면서 세인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정교하고 섬세한 조형예술과 독특하고 아름다운 매력을 지닌 문물이 출토되면서 고대의 촉나라가 세상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1986년 7월 어느날, 쓰촨성(四川省) 광한시(廣漢市) 웨량완촌(月亮湾村)의 ‘삼성퇴’라고 불리는 흑더미 근처에서 인부들이 흙벽돌을 캐는 작업을 하던 중 인부 하나가 흙더미 속에 심상찮은 물건이 섞여 있는 걸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본 결과 옥돌이었으며 쓰촨성 고고학 발굴팀 대원들이 즉시 현장에 도착했지만 별다른 유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들 실망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한 고고학자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상한 모양의 청동 인물상이 그의 시선을 압도한 것이다. 크기와 표정, 장식이 각각 다른 청동 인물조각상이 계속해서 출토되었으며, 이들은 이제껏 알려진 중원문화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혹시 외국민족이 이곳에서 거주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곳에 우리가 모르는 또다른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말인가?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이 청동기는 3천년~4천년 전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때만 해도 신비로운 고대왕국 ‘고대 촉나라’가 실제로 존재했었다. 사료 <화양국지(華陽國志)>에서 고대 촉나라를 “촉후잠총, 기목종, 시칭왕(蜀侯蚕丛,其目纵,始称王)”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풀이하면 “긴 눈을 가진 사람이 이곳의 첫번째 왕”이라는 뜻이다. 이런 생김새에 관한 묘사는 삼성퇴에서 출토된 청동 인물상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고대 촉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사실 삼성퇴 유적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출토된 문물은 이곳이 바로 “중화문명 기원의 다원일체성의 중요한 구성부분”임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저명한 선진사학자 리쉐친(李學勤)은 “만약 파촉(巴蜀)문화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가 없다면 중국문명 기원과 발전에 대해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중국문명 연구 과정에서 풀리지 않는 적잖은 문제점들은 어쩌면 파촉문화에서 답을 구해야 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 삼성퇴가 파촉문화 연구의 핵심지역이다.

 1980년대 이전에는 중화문명이 황하(黄河)유역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학계의 주요 학설이었지만, 량주(良渚), 스쟈허(石家河), 삼성퇴 등 창쟝(长江) 유역에서 잇따라 유적이 발견되면서 중화문명 기원에 대해 학계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저명한 고고학자 쑤빙치(蘇秉琦)는 “삼성퇴를 대표로하는 고대 촉나라 문명이 하상(夏商)시기에 이미 ‘고성, 고국, 고문명’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중화문명 다원일체론의 중요한 구성부분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은 훗날 학계의 공통인식으로 자리잡았다. 앞서 출토된 삼성퇴의 전형적인 밑둥이 좁은 항아리, 새머리모양 국자손잡이, 존형(尊形) 주전자 등 도기와 청동 인물상, 청동신수(神樹), 옥장과 황금가면 등은 모두 색다른 지방 문화의 특색을 띠고 있다. 청동 술잔, 뇌(罍, 중국 고대 제기의 하나), 옥장, 옥종, 옥벽, 옥창 등은 황허유역과 일치하는 것으로 봐서 삼성퇴가 중화문화의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눈부신 걸작은 고대 촉나라 문명의 찬란함과 중화문화의 풍부함과 다양성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올해 6월, 삼성퇴 유적지에서 씨실과 날실의 조직이 뚜렷한 견직물의 잔해가 출토되었는데 7개 삼성퇴 ‘제사갱’ 가운데 대량의 견직물 흔적이 발견됨으로써 3000년 전 고대 촉나라 왕국이 실크를 사용했다는 점을 뒷받침해 주었다. 이는 이번 삼성퇴에서의 새로운 발견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발견 중 하나로 꼽힌다.

 “굉장히 놀랍지만 또한 예상했던 바이다.” 방직품문물보호 국가문물국 중점과학연구기지(중국실크박물관)의 저우양건(周暘根) 주임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했을 때 고대 촉나라에는 분명 실크가 있었고, 이는 그가 삼성퇴 청동기 잔해를 항저우(杭州) 실험실로 가져와 면밀히 검사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대량의 발견은 여전히 놀라운 발견”이라고 말했다.    

 고고학자의 소개에 따르면 청동의 부식 물질은 항균작용 등의 특성이 있어 실크 잔해물 보존에 유리한 여건을 제공했고, 따라서 실크 등 유기잔해물이 청동기 표면에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퇴 출토 문물 가운데 대부분에서 불탄 흔적이 발견됐는데, 고고학자는 이를 일종의 ‘제사’ 방식으로 추정했다. 이는 ‘제사’ 환경에서 발견된 첫번째 실크 흔적이다. 앞서 생활환경에서 발견된 실크나 상·장례 풍속에 따른 묘장(墓葬, 고분)에서 발견된 실크와는 또 달랐다. 저우 주임은 이번 삼성퇴 ‘제사갱(祭祀坑)’에서 실크를 대규모로 발견함으로써 실크의 최초 기능이 제사 활동에 있었고, 천지인신(天地人神)과의 대화를 위해 사용되는 등 정신적 차원에 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문헌과 전설에서 고대 촉나라 왕국은 실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그동안 이를 입증할 견직물의 실질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것 뿐이었다. 쓰촨성 문물고고학연구원 원장 겸 삼성퇴 유적지 고고학발굴팀 총 책임자인 탕페이(唐飛)는 삼성퇴 실크제품 잔해물의 발견은 고대 촉나라가 중국 고대 실크의 중요한 기원지 중 하나임을 뒷받침해 준다고 말했다.

 고문자 학자는 촉나라 문자가 누에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허신(许慎, 동한 시대의 학자)은 <설문해자·목부(说文解字·目部)>에서 “촉은 접시꽃 안의 누에이다. 누에의 상목은 촉의 두상과 같으며 중간모양은 꿈틀거리는 애벌레의 몸과 같다”고 풀이했다. 촉나라의 이름 또한 최초에는 양잠과 관련이 있었다. 촉의 칭호는 중원 통치자가 쓰촨 분지에서 누에를 기르는 종족인 잠총을 이르는 호칭이었다. 이백은 <촉도난(蜀道难)>에서 “잠총과 어부(鱼凫, 물고기 잡는 새)가 있는데, 개국이 왜 망연한가”에서 잠총과 어부를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잠총 부족은 누에를 길러 경제활동에 종사했다. <화양국지·파지(华阳国志·巴志)>에는 우(禹)임금이 “회계(会稽)에서 제후들을 회견했을 때 진보를 바친 왕이 수만 명이 넘는다. 파나라와 촉나라의 왕이 다 갔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서주(西周) 시기에 촉은 이미 주왕조에 실크 제품을 조공했다. 2,000여년 전 촉의 실크는 사치품이었다. 한(汉)나라 때 청두(成都)는 동남쪽 모퉁이에 담을 두르고 실크 공장을 지었으며, ‘금관(錦官)’이라는 관리를 파견해 감독하게 했는데, 이곳을 ‘금관성(錦官城)’이라 칭했다. 촉나라 실크산업의 중심은 청두에 있었는데, 현재 청두에 흐르는 금강(錦江)도 이런 연유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이로써 당시 실크산업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알 수 있다.

 

 신쟝(新疆) 트루판(吐鲁番), 니야(尼雅), 러우란(楼兰) 등지에서 출토된 동한(东汉) 위진(魏晋)부터 당(唐)나라 초기의 견직물이 촉나라에서 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도 있다. 한 전문가는 니야에서 출토된 저명한 ‘오성출동방리중국(五星出東方利中国)’ 실크를 가리켜, 이는 전형적인 촉금(蜀錦, 촉나라의 비단)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밖에 삼성퇴에서 4600여 점의 바다조개가 출토되었는데, 그중 일부는 인도양 심해의 환문화패(環纹貨貝)임이 밝혀졌다. 이는 일찍이 은상(殷商)시기에 촉나라가 남아시아와 교역을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들이 교역에 이용한 길은 중국 서남과 인도지역의 고대 교통노선인 촉신독도(蜀身毒道)이며, 여기에서 ‘촉’과 ‘신독’은 각각 쓰촨과 인도를 말한다.

 <사기·서남이열전(史记·西南夷列傳)>의 기록에 따르면, “원수원년에 시호 박망후(博望侯) 장건(張騫)이 사절의 임무를 띠고 대하국에서 체류할 때, 촉포(蜀布)와 공죽장(邛竹杖)을 보고 이 물건들은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 물었더니 답하길 동남 신독국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그곳에서 수 천리를 와야 촉나라의 시장에 들여올 수 있다”고 했다. ‘촉신독도’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되었고, 이 길은 오늘날 남방 실크로드로 불린다. 

사진: 한샤오(韓笑)

편집:高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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