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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넘어온 목소리, 공자의 참뜻을 다시 읽다

2026-02-25 11:03:48 来源:금교

‘학습강국(學習強國)’ 앱을 여는 순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는 고전명구가청아하고 경쾌한 ‘딸랑’하는 물방울 소리와 함께 화면에 떠오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적신다.

거센 물결이 모래를 씻어내고 오직 귀한 금만 남기는 것처럼, 이 문장은 중화 문명의 장구한 역사를 거쳐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왔다. 이는 곧 그 사상이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는지를 짐작케 한다. 다만,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과 역대 학자들의 견해는 늘 한결같지 않았다.

‘설(說)’은 ‘열(悅)’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글자로 기쁨과 즐거움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문장은 흔히 “배운 뒤에 다시 익히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로 풀이된다. 하지만학자와 학생들에게는 반드시 공감되는 문장은 아니다.주입식 학습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반복해 복습하라니, 배울수록 흥미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데 어찌 즐겁다 하겠는가?

사실 우리가 이 문구를읊조릴 때면,흔히 그 ‘즐거움(悅)’을단순히 지식의축적에서오는 기쁨으로만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국학의 대가난화이진(南懷瑾)은<논어별재(論語別裁)>에서 이구절을 다른 시각에서 해석했다. 그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다(學而時習之)’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학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라고 했다.흔히‘책을 읽는 것이 곧 학문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이는잘못된 관념이다. 유가 사상에서의 학문은 단순한 문학이나 지식이 아니다. 글을잘 쓰는 것은 문학적재능이있기 때문이고, 지식이 풍부한 것은 박학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글자를 한자도 알지 못하더라도 사람 됨됨이가 바르고, 하는 일이 옳으며, 그 바름과 옳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학문이라 여겼다.

<논어(論語)>에이런 구절이 있다.‘어진 이를만날 때 경의를 표해야 하며,부모를 섬길 때는 힘을 다하고,임금을 섬길 때는 몸을 바치며,벗과 사귈 때는 말을 믿음 있게 지킨다면,설령 글을 배우지 않았다고 해도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하겠다.(賢賢易色;事父母,能竭其力;事君,能致其身;與朋友交,言而有信。雖曰未學,吾必謂之學矣.)’이는 곧 한 사람이 어진 이를 존중하고 도를 귀히 여기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약속을 지키는 등 도덕적 품행을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참된 학문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자는 이러한 덕목을 갖춘 사람이라면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진정한배움을 이룬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학문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난화이진은 학문은 글자나 지식이 아니라 삶의 경험 속에서, 사람됨과 일하는속에서 깨닫는 것이라고하였다.이러한수양은 단순히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우리의 교과서이며 ‘배움의 장’인 것이다.공자께서말씀하신“과를 관찰하여 인을 안다(觀過而知仁)”라는 것처럼,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반성하는 것 즉‘나는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하는 것, 바로 그것이 배움의 과정이다.따라서언제 어디서든사고하고 배우며, 체험하고 반성할 줄 아는 것이 학문이다.처음에는 반성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조금씩 나아지다 보면 자연스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하고 기쁨을 느끼게 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학(學)’과 ‘습(習)’의 기원을 갑골문에서 추적해 보면, 또 다른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학(學)’이라는 글자는 위쪽 양쪽에 ‘손(手)’이 있고,가운데에는 ‘효(爻)’가 자리하는데 이는교차하는산술막대기나괘상(卦象)을 상징한다.아래에는 때때로 ‘宀(집우, 屋宇)’가 덧붙거나 생략되기도 한다. 핵심은 두 손으로 ‘효’를 받드는 모습에서 드러나듯, 학문이 결코 수동적으로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점이다.<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학’을 ‘깨달음(覺悟)’이라풀이한다.상고 시대 선조들은 천체를 관측하고짐승의 흔적을 구별하며 줄을 엮어기록을 남겼다. 그 때마다 한번의‘학’은 혼돈 속에서두 손을 적극적으로 개입해규칙을모사하고 무질서 속에서 ‘효’가 상징하는 우주의 질서와 인간 사회의 법칙을 추출해내는 행위였다.

오늘날 정보가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상황에서도학문의 본질은 여전히 변함없다. 진정한 학습자는 결코 정보를 단순히쌓아두는 사람이 아니라 혼잡한 데이터 속에서 사유의 ‘손’을 움직여핵심구조를 능동적으로 ‘받들고’, 그것을자신만의 세계 해석의 의미 그물로 엮는사람이다. 바로이 능동적 구축의 권한이 기쁨이라는 첫불씨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립된 ‘학’은 아직날개짓을 시작하지 않은 새과같다. ‘습(習)’을 보면갑골문의 형태 속에 그 뜻이 드러난다.위쪽의 ‘우(羽)’는 새의 날개를, 아래의 ‘일(日)’은태양을 뜻한다. 이는 맑은 날 어린 새가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이며 나는 법을익히는 모습을 그린것이다.<설문해자>에서는 “‘습’이란여러차례날개짓 하는 것이다(習,數飛也)”라고 풀이하며반복과 실천을 통해 배운 것이마침내 몸에 밴 본능으로 승화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우한대학교(武漢大學)문학원교수이자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완셴추(萬獻初)는 이렇게 분석한다. 갓 태어난 새가 둥지 안에 한 달이나 머물며 날개를 펼칠 기회를 기다린다면 이미 독수리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그래서 어미 새는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새를 바위 절벽 끝으로 몰아 아래로밀어 날게 한다. 한 번 실패하면 두 번, 두 번이 안되면 세 번. 그렇게 반복되는 시도 끝에 마침내 아기 새는 날개를 펴고 허공을 가른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다.따라서 ‘습(習)’이란 곧 끊임없는 연습을 의미하며, 배운 것을 몸에 익혀 자신의 능력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단순히 지식을 쌓아 두는 것만으로는큰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실천 속에서 검증하고활용하며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바뀌는 순간에야 ‘즐거움(悦)’이 피어난다.

나아가‘시(時)’라는 글자에 담긴지혜또한단순히‘때때로(時常)’의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그 속에는 ‘때에 맞게(因時)’, ‘적절한 시간(適時)’이라는 의미가 함께 깃들어 있다.이는 배움과 실천이인생이라는 긴 흐름 속에서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리듬, 곧 평생을 관통하는삶의 운율을 의미한다.아기새가 하루아침에 허공을 가르는 것이 아니듯, 인간의 성장 또한 세월 속에서 인식과 능력을 끊임없이 새로이 다지고,갈고닦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듯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學而時習之)”에서 비롯되는 기쁨은 결코 정적인지식의 축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앎과 행함이 하나로 이루어질 때(知行合一) 능력이 눈에 띄게 성장하며 얻는만족감이다.삶이 인식과 실천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며 스스로를 깊이 확인하고 가치가 실현되는 순간에 경험하는 절정의 기쁨, 바로 이것이야말로 중화 문명의 가장 원초적인 정신적 유전자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옛사람들은 이미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와 ‘지행합일’을 실천하며 인간이 지식과 행동을 통합하는 모범을 일찍이 보여주었다.

공자는사상(師襄)에게거문고를배울때단순히기교만을익힌것이아니었다.그는 먼저 ‘그 곡의 구조를 깨달았고(得其数)’, 이어 ‘마음과 뜻을 이해했으며(得其志)’, 나아가‘연주자의 품성과 인격까지 완성하는(得其為人)’경지에 이르렀다. 마침내 마음으로 통달한 순간, ‘거문고 소리는 깊고 어둡게, 길게 울려 퍼졌다(黯然而黑,几然而长)’. 상상 속에서 문왕(文王)과 신령하게 교감하며 느낀 그 즐거움은 단순한 기쁨을 넘어선 장대하고 웅장한환희였다.왕양명(王陽明) 또한 마찬가지였다.‘대나무의 이치를 탐구한다(格竹)’며칠흑 같은 나날을 보내다 병이 날 지경에 이르렀고, 훗날 용장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지행합일’을 제시했다. 그 핵심은 ‘앎은 행함의 시작이며, 행함은 앎의 완성(知是行之始,行是知之成)’이라는 통찰이었다. 그 순간의 각성은 인생의 장애를 넘어선 뒤찾아오는 밝음과 환희, 곧 존재 전체가 트여오는기쁨이었다.

공자의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라는 참뜻을 제대로 이해한 뒤,오늘날, 현대인들은정보 과잉의 시대에서도 어떻게고대의지혜를 나침반 삼아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까?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해답을 제시했다.“글자로 된책뿐 아니라글자로 쓰이지 않은 책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인생의 경험과 사회의 지혜를 배우는 데 힘써야 합니다.”, “학문과 지식은 단순한 이해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현실과 연결하여 지행합일을 이루고 사물의 이치를 깊이 탐구하며 배운 것을 삶에 실천해야 합니다.”이러한 관점은 공자의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는 사랑과 본질적으로 이어진다.

‘학(學)’과 ‘습(習)’—거북 등과 짐승뼈에 새겨진 이 오래된 지혜는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미 진정한 기쁨으로 향하는 고효율의 ‘알고리즘(算法)’을 제시하고 있다.‘학’은정보의 시대 속에서 능동적으로 새 지식을 얻고 체계를 세우는 일이며, ‘시’는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으며배움을 평생의 호흡처럼 이어가는 일이다. ‘습’은실천을 통해 지식을 내면화하고 현실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삶의 날개를 펴는 매 순간, 우리는 드넓은 세상 속에 자신만의 가치라는 선명한 궤적을 남긴다. 이것이야말로 3000년의 세월을 뚫고 오늘까지 빛이 바래지 않은 한결같은 중화의학습정신이다.

【编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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