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역사 속, 수많은 온천이 빚어낸 이야기
2026-03-20 11:23:06 来源:금교
황제의 별궁에 딸린 온천에서부터 문인들이 즐기던 산수 풍류, 그리고 백성들의 일상 속 건강 관리 습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솟아오른 온천은 왕조의 흥망과 시대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아 왔다. 또한, 온천은 수천 년 동안 치유와 삶, 자연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이해와 실천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어 왔다. 그렇게 온천은 조용히 사람들의 삶과 미각 속으로 스며들어 하나의 문명적 흐름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 주고 있다.
궁궐의 온천, 왕조 역사에 남은 따뜻한 흔적
중국의 온천 개발과 이용의 역사는 세계 문명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오래되었다. 관련 기록은 선진(先秦) 시대 문헌에도 남아 있다.
진시황(秦始皇)은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온천과 가장 먼저 깊은 인연을 맺은 황제 중 한 사람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진시황이 여산(驪山)을 순행하던 중 신비로운 여인을 만나 온천에서 종기를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진시황은 돌을 쌓아 건물을 세워 ‘여산탕(驪山湯)’을 건립하게 했는데, 이것이 훗날 황실 전용 온천 궁원(宮苑)의 시초가 되었다. 이 전설은 온천을 백성을 보듬는 신성한 치유의 근원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온천을 지고무상의 황권과 긴밀히 연결시킨 것이다.
한(漢)나라에 이르러 온천의 치료 효능이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동한(東漢) 과학자 장형(張衡)은 <온천부(溫泉賦)>에서“하늘과 땅의 기운이 어긋나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 전염병이 돌기 마련이다. 그때 온천이 온갖 더러움과 병을 씻어내 준다(六氣淫錯,有疾疠兮。溫泉汨焉,以流穢兮).”라고 기록했다. 당시 여산 온천은 황실의 중요한 휴식과 치료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중국의 온천 문화가 진정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개방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던 당(唐)나라 시대였다. 당태종(唐太宗)은 재위 시절 여산 온천을 각별히 중시하여, 넓고 웅장한 온천 행궁을 세웠다. 그곳은 정치적 공간이자 휴식과 의례를 겸하는 장소였다. 당현종(唐玄宗) 시대에 이르러, 황실의 온천 사랑은 극에 달했다. 기존 행궁을 바탕으로 여산은 대규모로 확장되어 궁전과 정원, 온천 시설이 한데 어우러진 화청궁(華清宮)으로 재탄생했다. 궁중 곳곳에 온천 연못이 촘촘히 배치되어 구역이 명확히 구분되어, 황제의 일상과 후궁들의 목욕과 휴식을 모두 충족시켰다. 그중에서도 현종이 양귀비(楊貴妃)를 위해 마련한 ‘해당탕(海棠湯)’은 가장 전설적인 온천으로 꼽히는데 온천 연못 벽을 남천옥으로 정교하게 쌓아 올린 해당탕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활짝 핀 해당화를 방불케 하였다. 이는 황실의 호화로움과 낭만이 자연의 선물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장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황실의 온천 사랑은 온천의 가치와 중요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온천 시설의 건설과 관리도 한층 체계화시켰다. 당태종은 직접 ‘온천명(溫泉銘)’을 지어 온천의 변함없는 덕을 찬양하는 ‘육기(六氣)가 어그러지고 전염병이 창궐할 때, 다행히도 온천이 끊임없이 솟아올라 세상의 더러움과 병을 씻어낸다(不以古今變質, 不以凉暑易操).’라는 글을 비석에 새겨 후세에 전하게 했다. 이 같은 온천에 대한 관심은 세대를 이어 전해졌다. 청(清)나라 강희제(康熙皇帝)는 적성(赤城)과 소탕산(小湯山) 등 온천을 자주 찾았을 뿐만 아니라 보고할 문서를 가지고 행궁으로 가 직접 검토할 정도였다. 이처럼 온천은 왕조의 역사 속에서 한결같이 따뜻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었다.
시적 감성과 온천의 울림, 마음을 적시는 문화의 흐름
중국 문화에서 온천은 몸을 씻는 공간을 넘어 마음이 쉬어가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시대를 거쳐 이어온 문인과 선비들의 시와 글은 온천에 정신적 깊이와 미적 향기를 불어넣었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곳곳을 떠돌며 만난 온천을 아낌없이 찬양했다. 후베이(湖北) 잉청(應城) 탕지(湯池)에서 이백은 장대한 시구를 남겼다. “그 신비로운 여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 깊고 고요한 산자락 속으로 사라졌으나, 그녀가 남긴 온천만은 지금도 쉼 없이 솟아 거대한 강물로 흘러든다. 땅속 깊은 곳에서는 붉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하고, 모래 언덕 위로는 눈처럼 희고 맑은 김이 가늘게 피어오른다(神女殁幽境,湯池流大川。地底炼朱火,沙旁歊素煙).” 이 구절에서 이백은 화려한 상상력으로, 땅속 열기가 솟구치는 장관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초봄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황제의 은총으로 양귀비는 화청지에 몸을 담갔다. 온천 물결은 고르고 부드러워, 눈처럼 희고 여린 그녀의 살결을 어루만져 주었다(春寒賜浴華清池,溫泉水滑洗凝脂).”이 구절 덕분에 화청지는 중국 온천 문화의 정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성리학의 대가 주희(朱熹)는 산중 온천에서 철학적 사색과 마음의 정화를 누렸다. 그의 시 <온천(溫泉)>에는 “대지 아래서 누가 저 붉고 뜨거운 불을 밝혀 옥 같은 온천의 물을 이토록 데워 놓았을까. 사람들이 찾아오면 옷을 풀고 몸을 맡겨, 수없이 겪어온 세월의 고난과 번뇌를 이 한 웅덩이의 따스함에 모두 흘려보낸다(誰燃丹黃焰,爨此玉池水?客來爭解帶,萬劫付一洗).”라는 구절이 있다. 주희에게 온천에 몸을 담그는 일은 곧 마음을 비우고 속세를 넘어서는 해방에 이르는 길이었다.
시인들이 시 속에서 펼친 상상, 감상과 더불어, 옛사람들은 온천을 이성적으로 관찰하고 체계적으로 기록하였다. 북위의 지리학자 예도원(酈道元)은 <수경주(水經注)>를 통해 전국 31곳의 온천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수질과 효능을 자세히 서술했다. 예를 들어, ‘노산 황여탕은 쌀을 익힐 만큼 뜨거우며 그 물을 마시면 온갖 병을 치료할 수 있다’라는 기록처럼 그는 온천의 실제 쓰임과 가치를 문헌 속에 분명히 남겼다. 당나라 시인 왕건(王建)은 <화청궁>에 “궁궐 안 정원 구역마다 온천수를 나누어 따뜻한 온실을 적셨다. 음력 2월 중순이면 이미 싱싱한 과일과 채소가 황제에게 바쳐졌다(內園分得溫湯水,二月中旬已進瓜).”라고 기록했다. 이 기록은 이미 천여 년 전부터 온천의 열기를 이용해 계절을 앞당겨 농작물을 재배해 온 당시 사람들의 놀라운 지혜를 잘 보여준다.
당나라 이후, 온천에 대한 기록과 시문은 끝임없이 이어져 지난 2000여 년 동안 전국 각지의 지방지(地方志)에 전해졌다. 그 기록들은 단순히 온천의 위치와 지리 정보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수한 신화와 전설, 시와 대련(楹联), 민간 이야기까지 담아 중국 온천에 관한 ‘문화 백과사전’을 이루었다. 온천은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문화적 상징으로 승화되었으며 문인들의 글 속에서 세속의 때를 씻어내고 잡념을 거두게 하며, 철학적 사유를 깨우는 정신적 원천이 되었다.
골목골목 스며든 온천 풍습, 삶을 기리는 이야기
온천 문화가 끊임없이 어이질 수 있었던 것은 온천이 중국 사람들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어, 각 지역과 민족의 특색을 담은 풍속과 전통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윈난(雲南) 아이라오(哀牢) 산악 지역 합니족(哈尼族) 마을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세삼(洗三)’이라는 풍습이 있다. 신생아가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가족들은 깨끗한 온천수를 길어 아기를 목욕시키며, 과거의 때를 씻어내고 아이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튼튼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후베이 징산(京山) 지역에서도 한 달이 되지 않은 신생아에게 온천 목욕을 시키는 전통이 있다. 이는 아이의 체력을 길러주어 각종 질병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한다고 믿는 것이다.
산둥성 린이(臨沂) 지역의 탕터우(湯頭) 온천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곳 주민들은 대대로 이어오는 풍습에 따라 매년 청명절마다 ‘탕터우 모임(湯頭集會)’을 연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날 ‘탕신(湯神)’이 나타나며 이른 새벽 다섯 시 이전에 길어 올린 온천수는 특히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날이면 사방에서 이웃들이 모여 장터를 이루고 단순히 목욕과 치유를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큰 민속 축제가 펼쳐진다.
윈난성 누장(怒江) 율속족(傈僳族) 자치주에서는 음력 정월 초이틀에서 초사흘 사이, 주민들이 전통 복장을 차려입고 루수이(瀘水)시 덩겅(登埂) 온천에 모여 수일간 이어지는 ‘짜오탕회(澡塘會)’라는 전통 행사를 즐긴다. 남녀노소가 뜨거운 온천물이 고인 간이 돌온천에 몸을 담그고 때를 씻으며 피로를 풀고,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이 풍속은 수백 년간 어어져 오면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독특한 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
【编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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